집을 가는 버스를 탔다.
장날이었다. 홍천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장날이 거의 끝나가는지 보따리를 한 가득 손에 드신 할머니들이 정류장을 빼곡하게 매우고 있었다.
버스가 한 대, 두 대 지나가고 동면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자리가 없을 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을 안고 버스에 올랐는데 출발 지점이라서 그런지 텅텅 비어 있었다.
피곤했는데 다행이었다.
내리는 문 옆에 있는 자리에 앉아서 밖을 보며 가고 있었다.
다음 정류장에서 우르르 어르신 분들이 탑승했다.
애써 괜찮은 척하며 보따리를 들고 계시는 할머니분께 자리를 양보했다.
조금은 바뀐 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곧이어 자리에 앉아 계신 할머니께서 나를 이리저리 보시더니 말을 걸어오셨다.
구불구불 길을 따라서 가고 있었다.
동면으로 들어가는 터널이 생긴지 오래지만 버스는 아직 자신의 길을 지키며 산길을 따라서 돌아가고 있었다.
여우고개라고 부르는 길을 따라서 돌아가는데 할머니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할머니는 어릴 때부터 동면에 살았다고 한다.
이야기를 시작하시고 나는 한 번도 우리 동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 때 깨달았다.
여자라서 집에서 학교를 안 보내줬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학교에 가고 엄마나 언니랑 같이 갯가에 나가 겨울에 물이 차가운데 손이 퉁퉁 얼어 붙도록 빨래를 했다.
조물조물 빨래를 다 끝나고 집에 돌아 올 적이면 손이 부르트고 갈라져서 사이사이로 피가 베어 나왔다.
같이 놀던 친구들은 하나 둘 학교를 가고 나도 학교에 가고 싶다고 부모님께 물어보면 무슨 여자애가 그런 데를 가냐며 두들 거 맞았다.
내가 열 살, 열 한살이 되었을 때, 남동생은 학교를 갔다.
나도 학교에 가고 싶었는데 그것이 참 부러웠다.
동생은 가끔 학교를 못 가는 나를 보면서 약을 올렸다.
화가 나서 동생을 때리거나 골탕먹이면 동생은 바로 어머니나 아버지한테 달려가서 일렀다.
그럼 또 나는 두드려 맞았다.
동생이 숙제를 안 하거나, 학교를 빠지고 친구들이랑 놀러가면 나는 화가 났다.
난 가고 싶어도 못 가는데 그런 동생을 보면 너무 얄미웠다.
어느 날 야학이라는 것이 생겼다.
학교를 못 다니거나 못 배운 사람들이 배울 수 있게 생긴 것이었지만, 그것 마저도 아버지는 못 듣게 하셨다.
빨래를 하러 갯가에 나가거나 장을 보고 오는 날, 날이 조금 저물면 담장 너머로 수업하는 소리가 들렸다.
담장 위로 머리를 빼꼼하게 내밀고 몰래몰래 수업을 들었다.
잠깐씩 듣는 것인데도 참 재미있었다.
까치발이 저릴 때 까지 수업을 듣다가 결국은 아버지한테 걸려서 집으로 끌려가 흠씬 두들겨 맞았다.
버스에 있던 나는 없었다.
할머니의 수줍게 웃으면서 말하시는 눈 속으로 학교를 가고 싶어했던 어린 소녀가 보였다.
같은 마을에 사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할머니였다.
우연히 버스에서 만나 조금은 나를 짜증나게 했던 이름모를 할머니였는데,
이름은 모르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억이 되어 나에게 들어왔다.
깜박하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칠 뻔 했다.
다급하게 내렸다.
멍하게 서서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타고 있던 할머니의 말소리가 귓가에서 사라졌다.
차가 지나다니지 않는,
해가 누렇게 변하고 논과 밭이 옆으로 있는,
바람이 알듯 말듯 모르게 지나가는 그 길을 걸으면서 나는 아직 소녀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