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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전

In your area

2022. 06.13 – 2022. 06.18.

국민대학교 K-art 갤러리, 서울, 한국

작가 노트

■ 박주희, 기울여 헤아리는

 2022. 각목, A4 사이즈 캔트지, 얼음, 수성펜, 낚시줄, 소형자석, 영상, 가변설치

 

 2016년,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강원도 홍천 동면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침 오일장 이 겹쳤다. 한손에는 피자가 포장된 박스를 들고 장을 갔다 오시는 할머니 한 분에게 자 리를 양보했다. 나의 눈은 창 밖에 펼쳐진 홍천강을 때라 갈대가 흔들리는, 해가 곧 떨어 질 듯한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님께서 말을 거시더니 이윽 고 자신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꺼내셨다.

 아주 잠깐, 이름도 생김새도 모르는 할머니 한 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내릴 곳에 도착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리고 급하게 정류장에 내렸다. 쌉싸름하게 콧속으로 들어오는 공기와 세 피아색으로 물든 풍경은 할머니 이야기의 잔상을 남기듯이 머릿속이 어지러울만큼 일렁 거렸다.

 그 잠시의 기억 때문인 건지, 아니면 자라던 교회에서 항상 마주치고 듣는 분들이 할머니 들이어서 그런 지는 모르겠다. 무작정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어 졌고, 이런 저런 핑계를 끊임없이 만들다 이웃에 계신 나의 삶을 함께 해온 할머니의 갑작스러운 부고 소 식에 정신을 차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2021년까지는 휘발되거나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이 안타깝고 아 쉬워서 무작정 작업을 시작을 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 고 작업을 하다 보니 작업을 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기록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문제에 부 딪히고 의문이 드는 지점들이 계속 생겨났다. 무엇을 기록하는지는 이미 하고 있는 일이 었다. 어떻게 작업으로 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고민 이기도 하고 약간은 두려움이기도 했다. 나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기존의 작업들은 단지 '기록' 에 중점적으로 작품을 만들어갔다면, 이번 작업을 할 때 다시 기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갔다. 나는 왜 이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려 할까. 고민이 반복 되고 어쩌면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기억되고 싶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 까이 지내고 보내왔던 할머니들이기에 그들을 통해서 비춰지는 나의 태도를 작품으로 기 록하고, 결국 그것이 나를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 작업에 있어서 단순히 기록을 한다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드러나지만 숨겨 지고 잠깐 씩 드러나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 작업을 시작했다.

 할머니들의 삶은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다양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여성, 딸, 어머니, 며느 리, 할머니 등. 억척스럽고 가난했던 시대의 삶은 그들의 이야기를 바깥으로 드러날 수 없 게 만들었다. 모든 이들이 그렇진 않다. 또 잠깐은 바깥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 니들을 지칭하는 다양한 이름들은 그들의 삶을 당연하게 만들고, 당연함 속에 타자이기도 했던 그들의 이야기를 배제시켜버렸다. 이번 작품에서는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대한 세상 과의 관계 속에서 발생한 물음과 그녀들의 태도에 대해 주목했다.

 작업을 시작 할 때 첫번째 작품은 그들의 드러나기도 하고 가려지기도 하는, 당연함 속에 묻혀버린 기억에 집중을 했다. 다양한 색으로 쓰여진 8명의 할머니들의 이야기는 기록의 가장 일반적인 방법인 글자로 쓰여져 있다. 종이 위에 틀에 맞추어서 쓰여진 이야기는 글 씨가 쓰인 순간은 우리가 바라 볼 수 있지만 곧 그것들은 그녀들의 지칭들과 삶의 단어들 로 인해 흐트러지고 번지게 된다. 부분적인 흔적으로만 남는다. 기화되고 남은 흔적은 흔 적이 아닌 것들과 함께 건져 올려져 쌓이고 널리게 된다.

 두번째 작품은 그녀들의 노래이다. 할머니들의 노래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여자라는 이 유로 공부를 못 가르쳐서 턱 끝까지 마음이 차올라 딸을 업고 가는 아버지의 노래, 딸이라 서 학교에 낼 돈이 없어 부모 몰래 오빠를 따라 학교에 가서 부른 노래, 엄마라서 자식 슬 픔을 이기기 위해서 부르는 노래 등. 할머니들의 노래는 시대와 환경에서 숨겨져 버린 당 연한 삶에서 잠시나마 세상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시간이 된다.

 두가지의 작업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단순히 기록을 한다는 것을 넘어서, 드러나지만 숨 겨지기도 하고 타자/그녀들의 존재는 없어져 버린 당연한 삶에 대해서 물음을 던지게 된다. 잠깐 씩 새어 나오는 그녀들의 (말)소리는 견고하게 쌓아 올린 세상의 장에 대한 약간의 균열일 수도 있다. 무엇이 그녀들의 이야기를 드러내기도 하고 흔적만 남기게 했는지. 무엇 에서 그녀들의 소리들은 흘러 나오는지. 할머니들의 연약한 이야기들은 군집을 이루고 구 조를 만들며 어느 순간 우리를 둘러싸고 있을 것이다.

 

 

▷ 캡션

안옥분, <양은솥, 세탁비누, 송사리, 각재>, 2021.

최복례,<그의 신발>, 2021.

김종기, <사랑노래>, 2021.

장옥녀,<잊혀지는 것>, 2021.

오월선, <사는건 재미있는 것이에요>,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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